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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

인생

한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는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간다.

그 무엇 하나 없는 흰 배경

그가 걷기 시작하니 그림자가 생겼다.

그림자는 아주 검은색도 아니고 아주 옅지도 않다.

하늘에 구름이 진하지도 옅지도 않게 끼어 있는 날씨에 구름에 비춰진 햇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와 같다.

그가 멈춰섰다.

그림자의 방향은 시계방향으로 조금씩 계속해서 돌아간다.

하지만 결코 그의 발아래에 완전히 들어오진 않는다.

그가 이리저리 돌아다녀보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는 점의 형태가 되지 않는다.

그 사이 그림자의 색은 어느새 불에 타 그을린 것처럼 검게 물들어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뒤를 돌아봤다.

너무 기쁘다는 듯이 밝은 표정을 지은 그는 뒤를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지나온 곳은 모두 불에 타 그을린 듯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그가 뒤로 달려가고

왜인지 그림자는 그 자리에 남아있다.

시간이 한참 흘러 그가 다시 그림자를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검게 물들었던 배경은 다시 흰색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가 또 그림자를 발아래 두려고 한다.

하지만 끝내 그는 발아래에 그림자를 두지 못했다.

또 다시 아까와 같은 자리에 서서 그가 뒤를 돌아본다.

아까와 같은 해맑은 표정

그가 뛰어간다.

다시 검게 물들어버린 배경 속으로